1.
박소현의 이전의 작업은 시간의 주름(할아버지의 삶, 점점 지워져 가는 기억들)을 주제로 신체적인 노화과정을 문자와 촉각적인 재료를 통해 온기 담은 작업을 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고 만난 작가는 현재 성주 창작스튜디오(경북청년예술촌)에서 과슈(Gouache)로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편견’에 관한 것이다. 이를 주제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사고 간에 발생하는 차이를 선의 반복으로 ‘편견’에 대한 물음을 시각화한다.
이번 작업의 주제가 ‘편견의 재구성과 해체’라고 한 것은 편견을 통해 편견을 벗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보는 것과 보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고 듣는 정보수용의 과정에는 선입견이 생겨난다. 그래서 특정 구성원 속에서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상황에 따라 편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지각의 과정은 개인과 집단의 지향성 속에 뿌리내린 심리적 현상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소현의 최근 작업의 키워드는 이러한 ‘편견’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을 위한 재료는 과슈를 사용해서 수채화종이에 물로 농도조절을 통해 선의 터치들로 전면을 가득 채운 작업이다. 완성된 한 점 한 점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 바로 부분과 전체가 다수인 하나로 종합(synthesis)을 이루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 전제된 것은 부분과 전체의 종합을 위해 작업과정에서 하나의 장면과 장면들의 면밀한 차이를 위한 지면의 공간인식과 터치간의 농도 등, 섬세한 작업과정을 통해 화면을 조율해 가면서 종합해 가는 구성력이 중요해 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전제된 해체의 방식에는 화면의 구성계획 및 터치의 반복된 과정을 통해 추상성과 촉각성이 담겨진다. 여기에는 생각과 느낌이 한 장의 화면이 다른 화면과의 연결되어 가는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원본을 해체 및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긋고 또 그은 선들의 행위를 통한 편견의 해체 및 재구성이 갖는 의미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수없이 반복해 가는 행위 속에 녹아든 선들의 풍경, 그 과정 속에서 원본의 사진에 담긴 기억들, 그 속으로 들어가 더 가까이 보고(해체) 또 멀리서 보는 시선(재구성)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지각하는 방식, 주관적 감정과 객관적인 시각차에 대한 해체 및 재구성일 것이다.
2.
박소현은 현재의 작업 이전에 전시했던 <확대된 세계(2019)>에서 “나이가 들면서 경험과 연륜이 쌓이고, 그 경험과 지식으로 추측하거나 판단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주관적 데이터가 작용한다. 그러나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항상 옳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보이지 않는 편견의 막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너머 확대된 세계를 그려서 편견의 막과 틈 사이에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후 지속해 가고 있는 작업은 개인적인 애착이 가는 사진 한 장, 새파란 하늘과 이름 모를 풀들이 곳곳에 있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있는 사진이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수십 차례 분할하고 특정 부분들을 픽셀 단위로 확대시킬수록 해체된 기억의 단편을 재구성한다. 박소현이 이러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혹은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보는 동시에 그 안에 디테일을 보고,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한 편견들이 깨지거나 혹은 추측했던 것에 신빙성을 더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촬영한 사진을 모니터에서 확대해 보면서 느낀 사진에 대한 편견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New Pixels(Gouache on paper,2021)>과 <Vertical Windows(Gouache on paper, 2022)> 연작들이다. 이 작업은 각 드로잉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를 나타내고 주변 드로잉과 서로 결합하며 또 다른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확장해 나간다. 이 작업의 과정은 이미지를 점점 확장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관객은 확대된 이미지를 먼저 마주한 후 세세한 이미지들을 보며 감상의 범위를 점차 축소해 나간다.
이처럼 박소현의 작업은 모니터로 확대된 이미지의 픽셀과 붓 터치를 통한 관계성을 통해 시·지각의 ‘차이’에 대한 시각화를 시도했다. 수천수만 번의 붓의 물리적 수행을 통한 부분의 종합이 만든 풍경, 그것은 가까이 보면 추상화가 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처럼 이번전시는 ‘보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거나 편견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인식의 차이를 시각화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볼 때처럼 멀리 가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주는 신비감 혹은 그리움에 대한 은유, 그 속에서의 상상은 하늘을 보면서 저마다의 그리움을 투사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정서를 담는 미술은 컴퓨터를 통해 픽셀화한 이미지 속에서 상상이 가 닿는 곳에서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3.
박소현의 <Vertical Sky>는 편견의 해체와 재구성을 위해 먼저 편향성이 만들어 내는 선입견을 해체(파편화)하고, 해체의 과정을 통한 재구성(파편의 종합)으로 이룬 풍경화다. 하나의 풍경사진에서 부분과 전체를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보거나 보이는 것’의 관계 속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 그것을 느끼는 것과 무관심한 것의 차이는 편견을 갖게도 하지만 또 벗게도 할 수 있다. 거울이 얼굴을 비추는 것이라면, 미술이 마음을 비추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일상에 스며있는 삶을 재료로 맛과 멋을 예술에 담아 마음의 양식으로 꽃피우는 것이리라.
박소현의 <Vertical Windows> 역시 일상에서 경험하는 ‘편견’이라는 주제를 미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마음을 비춘다. 아는 것과 모르는 사이, 내가 아는 것과 타인이 아는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리감은 다양한 시각차로 ‘편견’을 갖게도 한다.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과 친해지는 것이다. 원본도 없이 복제되는 디지털 이미지시대에 역설적으로 착시를 통해 착시를 깨는 미술, ‘보는 것’에 대한 훈련을 통해 안목성장이 보다 필요해 지는 시대다. 박소현의 근작들은 편견을 깨기 위한 편견이라는 역설, 어떻게 보면 시각적 이미지가 가진 하나의 질문을 통해 그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위해 관찰하는 대상, 그 이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들이 매우 다양하게 보인다. 여행 중에 느낀 기억이 담긴 풍경을 사진에 담아 그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로 점점 확대해 볼 때 픽셀(pixel, 즉 화소는 컴퓨터 화면의 화상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작은 점의 행과 열로 이루어져 있는 화면의 각각의 작은 점)로 특별한 기억이 담긴 사진을 재해석했다. 이 풍경의 기억을 담기위해 수천수만 번의 선을 겹쳐 그리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보여준다. 수채화나 아크릴의 단점을 보완하는 과슈를 재료로 선과 선이 겹쳐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투명한 물성이 필요해 물로 하는 매체가 필요했고 그래서 실제로 오묘하게 수채 과슈가 주는 톤, 그 느낌에 매료되어 과슈로 그린 풍경이다. 이 풍경은 하얀 사막과 붉은 사막이 있는 베트남 호찌민 근교에 있는 무이네(Mui Ne)에서의 특별한 기억의 단편이다. 이곳에는 요정의 샘(Fairy Stream)이 있다고 한다. 박소현의 그림이 그려진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는 픽셀화한 모래언덕이 담긴 사진이다. 이 기억의 저편에 있는 모니터 속의 사진을 더 가깝고 크게 끌어당길수록 점점 흐려지는 풍경의 이미지, 그러나 그 너머에는 여전히 기억 속 선명한 추억이 살아 숨쉬는 <Vertical Sky>다.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대표